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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환경, 미래를 위한 한지문화산업의 실현 HISC


본문내용

신라시대에 지금의 경남 의령군 봉수면 서암리 뒷산 국사봉에 대동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설씨’성을 가진 주지승이 살고 있었다. 이 절 주변에는 닥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라시대, 경남 의령군 봉수면 서암리 뒷산 국사봉에 대동사 (大同寺) 라는 절이 있었는데, 설씨(薛氏) 성을 가진 주지승이 살고 있었다. 이 절 주변에는 닥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의령현 토산조에 닥(楮), 종이(紙)가 보인다).

하루는 이 주지승이 닥나무를 꺾어 지팡이로 삼아 가지고 다니다가 절 앞의 반석에 앉아 이를 두드리며 놀았다 그러다가 지팡이를 그냥 두고 돌아갔다. 다음날 와 봤더니, 닥나무의 껍질이 반석에 말라붙어 얇은 막처럼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본 주지승은 이번에는 일부러 닥나무의 껍질을 벗겨서 돌로 짓이겨 반석에 늘어놓고 다음날 다시 와 봤다. 아니나 다를까, 이 껍질이 역시 엉겨 붙어서 말라 있었다.

여기에서 착상한 주지승은 이를 발전시켜 한지를 만들어 쓰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의령 사람들은 한지 제조의 시원은 의령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 의령에 국사봉은 있지만 당시의 절인 대동사는 남아 있지 않다.

이와 조금 다른 내용으로 구전설화가 의령의 향우지인『의령향우』에 정리되어있다. “1,000년 전 고려 때 의령군 봉수면 서암리에 국사봉 중턱에 약 20년전까지 터가 있었다는 대동사의 주지 ‘설(薛)’씨가 어느 봄날 닥나무껍질을 흐르는 냇물에 담가 두더니 껍질이 물에 풀리면서 삼베 올처럼 섬유질이 생기는 것을 발견하여 이를 손으로 주물러서 바위 위에 건져 놓았더니 종이와 같은 물체가 만들어져, 이것을 계속하여 종이를 만들었다” 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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